아틀리에에서 은 숟가락으로 제작한 드레스와 포즈를 취한 엘렌 호다코바 라르손.
“저와 패션 업계는 애증의 관계예요.” 인터뷰를 시작한 지 단 몇 분 만에 엘렌 호다코바 라르손이 내뱉은 말은 그녀가 걸어온 길의 독창성을 한마디로 함축했다. 우선 ‘애(愛)’ 부분부터 살펴보자. 새롭게 등장한 이 업사이클링의 여왕은 32년 전 스웨덴의 한 작은 시골 농장에서 태어났다. 엘렌이 가장 먼저 언급한 부분은 그녀의 부모님이다. “재봉사인 어머니를 통해 자연스럽게 옷에 흥미를 갖게 되었어요. 집 다락방에는 어머니의 헌 옷으로 가득했는데, 그것으로 제 옷을 만들어주곤 하셨죠. 하지만 그보다는 군인이셨던 아버지가 군복을 손질하고, 퇴근 후 매일같이 군화를 닦으시는 모습을 보며 자란 경험이 더 결정적이었던 것 같아요. 아버지를 보면서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어요. 두 분 모두 창의력이 뛰어났는데, 그 점이 많은 힘이 되었습니다.” 엘렌은 감수성이 풍부한 청소년이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쓰며 자신이 속한 세상에 대해 고민했다. “그 당시 저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어떤 식으로 꾸미는지, 옷차림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지 등 ‘표현’이라는 주제에 온통 빠져 있었어요.” 이후 예술적 감각이 남달랐던 엘렌은 예술대학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회화와 조소를 공부하기 시작한다. “저는 다른 그 무엇보다 제 몸을 자주 활용했어요. 사물을 조각하는 것보다는 그게 더 간편했거든요. 그때 모든 게 자리를 잡았어요. 표현방식에 대한 저의 관심과 예술적 오브제를 만드는 일에 대한 즐거움이 옷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구체화된 것이죠.” 스스럼없이 자신을 유머의 주제로 삼는 그녀는 예술대학에 다니면서 만나게 된 학생들이 모두 옷을 너무나 근사하게 차려입고 개성도 강해서 위축감을 느꼈다고 털어놓는다. “시골 농장에서 막 튀어나온 분위기를 풍기는 제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어요. 2000년대 초반에는 사촌 오빠에게서 물려받은 옷으로 저만의 스타일을 찾아야겠다고 다짐했죠.(웃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느꼈던 괴리감 덕분에 성장할 수 있었어요. 저 친구들은 어떤 식으로 옷을 입기에 저렇게 자신감이 넘칠 수 있는지 탐구하게 만들었으니까요.”
엘렌은 이러한 다양한 경험 사이의 연결점을 찾기 시작했다. 그 결과 패션 업계에 진출하기로 마음먹고 스웨덴 섬유학교에서 학위를 취득했다. “패션이라는 분야를 더 잘 이해하고 실력도 다지고 싶었어요. 하지만 궁극적으로 제가 패션의 길을 가게 된 것은 미술 공부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팝아트, 특히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ready-made)’ 작업에서 큰 영향을 받았거든요. 이후 낡은 옷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고 그로부터 어떤 특별한 것을 만들 수 있는지 탐색하는 것을 작업의 근간으로 삼았습니다.” 이러한 시도를 한 것은 엘렌이 처음이 아니다. 일례로, 벨기에 디자이너 마틴 마르지엘라는 1980년대 말에 이미 이 영역에 발을 들였고, 최근 들어서는 마린 세르(Marine Serre)와 듀란 랜팅크(Duran Lantink) 같은 디자이너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우리의 방식이 공통점이 많은 것은 사실이에요.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생태학적 시기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으며, 오늘날 새 옷을 과도하게 소비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엘렌은 자신의 성을 따서 호다코바라는 이름의 브랜드를 설립한다. 오래된 재고를 기반으로 공급망을 구축한 그녀는 낡은 벨트로 만든 가방 등 독창적인 디자인들을 선보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재능을 알아본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구찌와의 협업을 제안했고, 낡은 벨트와 앤티크 숟가락을 사용해 만든 엘렌의 드레스는 파리 패션위크에서 화제가 되었다. “저는 오래전부터 이 일을 하게 된다면 끝장을 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은 앞으로도 계속 패션의 중심지로 남아 있을 파리에서 컬렉션을 선보이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팝아트, 특히 뒤샹의 레디메이드 작업에서 큰 영향을 받았어요. 낡고 버려진 옷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고 그로부터 어떤 특별한 것을 만들 수 있는지 탐색하는 것이 제 작업의 근간입니다.
업사이클링은 그녀가 하는 일의 윤리적인 측면이지만, 그 신념을 공유하는 수많은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돋보일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스타일이다. “제 강점은 쓰레기에서 출발하는 거예요. 제가 작업을 통해 정교함을 극대화시키면, 그때까지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것들을 완전히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되죠.” 실제로 그녀의 2024 F/W 컬렉션에서 가장 돋보인 부분은 바로 이런 세련미다. 엘렌은 어린 시절을 보낸, 가죽과 나무 같은 두껍고 무거운 소재로 둘러싸인 농장 마구간에서 이번 컬렉션의 영감을 얻었다. 마치 마법이라도 부린 듯 승마 부츠가 격식 있는 가방이나 고혹적인 뷔스티에로 변주됐다. 두 개의 앤티크 은색 트레이 뒷면을 가죽 스트랩으로 연결한 뷔스티에는 또 어떤가? 지난 8월 은 숟가락으로 제작한 홀터넥 톱을 입고 레드 카펫에 오른 케이트 블란쳇을 비롯해 몇 시즌 전에는 수백 개의 볼펜으로 만든 드레스로 큰 주목을 받았다. “이 펜 드레스는 저의 일기 쓰는 습관과 밀접한 연관이 있어요. 저는 지금도 어디든 일기장을 가지고 다니며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펼쳐들어요. 저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의식이에요. 외부에서 오는 영향을 최대한 줄이고 오직 제 내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죠. 저는 세상 사람들이 생긴 것도 비슷하고 옷 입는 방식도 비슷하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런 제 마음속 깊은 곳을 파고들어야만 독창적인 룩을 떠올릴 수 있어요.” 결론적으로, 알레산드로 미켈레부터 케이트 블란쳇까지 많은 러브콜을 받는 그녀에게는 이제 웃을 일만 남은 듯하다.
이쯤 되니 앞서 그녀가 패션과의 관계에서 언급한 ‘증(憎)’, 즉 불만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저는 새 옷을 과도하게 사들이는 문화가 심각하게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요. 저에게 있어 가장 이상적인 방식은, 옷을 구매할 때 왜 그 옷을 사는지 이유를 정확히 알고 오랫동안 간직하며 입을 옷을 산다는 인식을 가지는 거예요.” 그녀는 “장인정신이 너무나도 많이 사라진 현실을 생각하면 무척 가슴 아픕니다. 장인정신은 옷의 근본인데, 그 과정이 산업화되는 것은 무서운 일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덧붙였다. 이것이 엘렌이 세운 호다코바라는 메종의 미래가 제기하는 역설이다.
엘렌은 대단한 야심가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끝을 볼 게 아니었으면 시작도 안 했어요. 현재 전 세계에 20개의 매장이 있지만 곧 2백 개까지 늘리고 싶어요. 잘 고안된 비즈니스 모델이 있기 때문에 재고와 자재의 공급망만 확장하면 돼요. 하지만 여기서 저에게 중요한 것은 재료 수급뿐 아니라 직원들을 대하는 방식에서도 올바른 가치관을 고수하는 것입니다. 저는 제가 고용한 제봉사가 자신의 역할을 진지하게 생각했으면 해요. 제가 이 일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이해하고 지지해주었으면, 자신의 역할을 통해 실질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고 느끼기를 바랍니다. 그저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만 따르는 사람이라든지, 최악의 경우 기계라고 생각하는 일은 없었으면 해요. 저에게 자신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실감했으면 좋겠어요. 자연이 벌을 필요로 하듯, 저에게는 그녀의 지식과 경험, 기술이 필요합니다.”
패션계의 권위 있는 시상식인 2024 LVMH 프라이즈의 최종 우승자에 오를 만큼 엘렌의 노력은 업계에서 큰 인정을 받고 있다. “처음에는 참여하기를 망설였어요. LVMH와 제가 같은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거든요. 저는 매우 다른 성격의 일을 하고 있어요. 저에게는 사업적인 면이나 트렌드보다는 장인정신이 더 중요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어요. 오늘날에는 제 작품을 이해하는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제가 업사이클링을 한다는 이유로 회사 설립 당시 제 비즈니스 모델의 성장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어요. 하지만 결국 성공할 수 있다고 모두를 설득했어요. 저는 그것이 지금까지 제가 이룬 승리 중 가장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Copyright ⓒ 바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