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시집 ‘진달래꽃’이 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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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론] 시집 ‘진달래꽃’이 피었습니다

경기일보 2025-03-31 19:32:02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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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은 ‘한국문학의 산실’이다. 인천을 배경으로 삼지 않고서는 ‘신’ 소설은 불가능했다. 봉건과 근대가 격돌했고 외세와 자주가 각축하는 사이에 낀 장소로 인천만 한 곳이 없었다. 신소설 곁에는 신체시가 자리했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기로 치자면 문인들이야말로 첫손이다. 소설가와 시인들이 인천을 배경 삼아 앞다퉈 글로 시대를 녹여 냈다. 인천은 싫든 좋든 신문물이 창조해 낸 당대 ‘핫플’이었다. 객지인들은 인천역에 내려 근대 문물을 훑어보고 바다에 반했다. 김소월도 제물포 바다 근처에 묵었다. 그가 1922년 ‘개벽’에 발표한 시구가 전하는 정경이다.

 

‘밤’의 첫 제목이 ‘제물포에서 밤’이었듯 소월은 인천이라는 장소와 자신의 정조를 얽어 시로 남겼다. “이곳은 인천에 제물포, 이름난 곳”이지만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바닷 바람이 춥기만 한” 인천이라서 그를 더 외롭게 몰아댄 듯하다. “홀로 잠들기가 정말 외로와요/맘에는 사무치도록 그리워와요/이리도 무던히/아주 얼굴조차 잊힐 듯해요.” 20대 초반이었을 그는 오늘날 젊은 독자들 정서를 끌어당길 정도로 ‘모던’하다. 대중음악가 장범준이 소월의 이 노랫말에 곡을 붙여 부르기도 했다. 제물포가 들어간 구절만 쏙 빼놓은 게 몹시 아쉽지만 애절한 곡조와 특유의 음색이 사무치게 임을 그리는 청년 소월을 빼박았다 해도 손색없다.

 

‘인천문학전람’은 <밤>과 ‘한국시의 최고봉’ ‘진달래꽃’이 몇 달 간격으로 이어져 있다고 분석한다. 이별과 사랑이라는 인류 보편 감정을 우리말 어감을 잘 살려 탁월하게 표현한 두 편의 시 발표 시차는 불과 다섯 달이다. 소월 개인사에 비춰 이야기를 구성한다면 진달래꽃에서 이별하는 임과 제물포 바닷가에서 그리는 임은 동일인이라고 추론해 봄직하다. 멀리 인천으로 떠나와 밤 바닷가에서 가다듬어 부르던 노래가 진달래꽃이라는 절창을 꽃피운 토양이었다는 서사도 그려 볼 수 있겠다. 시중에는 ‘초혼’이 소월이 여자 친구 장례식장을 다녀와 부른 진혼가로 알려져 있다.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독자들은 소월이 쏟아낸 정한을 받아안아 자기만의 서사를 창조하고 있다.

 

지난해 동구 배다리 아벨서점이 소월시집 특별전시회를 열었다. 건축가이자 수서가로 이름높은 이일훈 선생님이 평생 모아 둔 소월 시집 165권을 한자리에 펼쳐 놓았다. 작은 공간이지만 한쪽 벽면이 진달래꽃 분홍빛으로 가득 찼다. 분홍빛 벽 아래 시대를 건너뛰며 독자들을 만나온 책 표지만으로도 소월은 인천의 요즘을 살고 있는 독자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아벨서점이 운영하는 위층 시다락방은 2007년 11월 랑승만 시인 시낭송회를 필두로 지금껏 시낭송회를 진행해 온 곳이기도 하다. 아벨서점 곽현숙 대표는 소월 시집을 전시하면서 소월시 낭송회도 개최했다. 그가 시를 사랑하고 시인들을 챙기게 된 연원을 따져 보면 소월이 등장한다. 소월시집 전시회가 열리기 전에도 그는 소월이 남긴 유일한 시론인 ‘시혼’을 작은 책자로 만들어 지인들과 나눴다. 인천과 소월이 그렇게 만났다.

 

봄이 왔고 진달래꽃이 지천으로 피어난다. 올해는 진달래꽃 피는 산에만 오르지 말고 시집 ‘진달래꽃’이 피어난 지 어언 100년이라는 데 눈길을 주면 좋겠다. 건축물과 거리에 남은 근대 인천뿐만 아니라 인천이 지닌 문학 자양분도 캐고 챙겨야 인천 것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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